지리산 둘레길 8구간(운리에서 덕산까지)
오늘은 2023년 1월 올해 첫 지리산 둘레길을 간다. 둘레길을 갔다 오면서 느끼는 것은 다음은 어떤 풍경이 보일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기다려진다. 멀찍이서 보이는 지리산 주변 능선은 가파르지 않고 넉넉한 여유를 주는 산세가 펼쳐진다. 30분 이상을 가야만 산속으로 들어 갈 것 같다. 북쪽지방은 눈이 많이 내렸는데 산청군 운리마을은 들에 눈이 아얘 없다. 산 능선에만 히푸였게 듬성듬성 눈이 보인다. 지난번 둘레길 7구간에서는 눈보라가 몰아쳐서 비상용으로 가져간 아이젠을 착용했는데 너무 오래된 것이라 투박하고 조잡하여 걸을 때 벗겨져서 애로사항이 많았다. 이번에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새로운 신형모델을 구입해 가져와서 눈 속을 멋지게 걷고 싶었었는데 다음기회가 있기를 기다리며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바람이 몹시 불어서 걱정을 하면서 출발하는데 날씨가 따뜻하다는 일기예보만 믿었다가는 낭패를 본다는 겨울산행의 특징을 아는 터이라 약간의 여벌옷을 준비한 덕분에 털모자와 장갑을 끼고 힘차게 앞으로 나갔다. 지리산둘레길에 특징인 안내 이정표는 넓은 지역을 지날때는 많은 도움이 된다. 아주 꼼꼼하게 되어서 혼자서 걷더라도 그리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여러 인원이 동시에 움직이다. 보면 대화를 하면서 이동 중에 이정표를 순간적으로 지나치는 경우가 여러 번 발생하여 잘못길을 들어섰었다.
지리산둘레길은 평야지대가 아니다 보니 들판이 끝이 보이거나 길게 뻣어있어서 거리를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하지만 가까이 지나다 보면 기억을 끄집어내는 물건이나 장소가 보이곤 하여 반가울 때가 있다. 이번에도 그런 기대와 희망을 갖고 둘레길을 걷는다. 추수한 논에 벼그루터기를 바라보노라면 10대 시절 마땅히 놀 것이 없어 논에서 그루터기를 뽑아 던지며 놀았던 기억과 논두렁에 마른풀을 이용하여 불장난 또는 논두렁에는 땅에 구멍이 있었는데 그곳에 불을 지피고 무엇인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추억 이맘때부터 정월 대보름 좀 지나서는 늘 들판에 나가 불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이마을사람들의 휴식처인가 아니면 한여름 더위를 피해 둘레길 여행객들에게 쉬었다 가라고 갔다 논 의자들인가 하면서 지났다. 겨울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마땅히 보관할 장소도 여의치 않고 이곳 사람들이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갔다 놓았을까 둘레길을 지나오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아무튼 생각을 하고 설치했으리라. 여름에 지나가게 되면 한번 앉아야지. 여름에 다시 온다는 기약을 하게 되었다.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기분이다. 좋은 분위기와 느낌이을 받은 장소는 언제나 다시 오고 싶어 하는 감정을 갔지만 다시 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많지 않은 곳을 갔지만 남다른 기분은 어쩔 수 없다.
비록 겨울이라는 계절을 지나고 있지만 나름으로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많이 있다. 오늘도 어린시절엔 늘 보아 왔지만 이름을 잘 알지 못한 청미래덩굴 열매가 예쁘게 달려 있는 모습은 겨울에만 가질 수 있는 산이 주는 선물이다. 특히 황량한 주위 나뭇가지와 청미래덩굴의 앙상한 줄기에 외로이 매달려 있는 빨간색 열매는 길을 지나다 보면 확연히 눈에 띄어서 바로 보여서 나를 봐주세요 하면서 뽐내는 자세를 취한다. 겨울산은 한 여름에 푸르른 잎에 덮여서 보이지 않거나 계절이 바뀌여야만 나타나는 변화한 자연의 모습 속에서 어릴 적 동심을 끄집어내어 하나에 기억을 더듬어 간다. 이 어찌 행복하지 아니한가.
오늘도 아쉬움을 뒤로 하며 산을 내려가고 있다. 산 중턱을 지나오면서 많은 굴참나무 무리들이 눈에 들어와 막연히 이곳은 갖은 종류의 참나무들이 많이 있네 하면서 걸어가는데 그냥 알고 있는 굴참나무의 특징인 줄기 껍질이 두꺼워 만지면 질감이 부드러워 옆을 지날 때면 항상 만지면서 지나곤 했고 상수리와 비교하여 잎과 열매는 똑같고 단지 줄기 껍질만 차이가 나서 내가 좋아하는 참나무 종류이다. 또 같은 부분은 도토리라는 열매가 그해에 익는 게 아니라 이듬해에 익어서 다른 참나무 종류인 갈참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는 그해에 열매가 익어 차별이 된다. 이것도 몇 해 전 나무공부를 한다고 책으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자연은 우리가 알려고 하지 않으면 그냥 알게 되는 것이 많지 않다. 산을 내려가는 길목은 참으로 평화로운 길이다. 추운 겨울인데도 바람도 없고 눈도 쌓이지 않아 마치 늦겨울 어느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가는 기분이다.
둘레길을 걸으며 혼자서 여러 생각을 하면서 주변 자연을 두리번 두리번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제는 8구간까지 오다 보니 같은 일행과 가깝게 되어 함께 산행을 하곤 한다. 지금도 산을 내려오면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는데 일행 한분이 골짜기 냇가 건너 나무 위에 말벌(왕탱이) 집이 보인다고 하여 실물은 확연히 보이지만 사진으로는 약간 흐미하게 흰색으로 보인다. 예전에 여름휴가로 가족과 같이 전라북도 장수군 어느 산골로 휴가를 갔는데 초저녁에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는데 지붕 처마 밑에서 말벌 한 마리가 머리로 곧장 내려와 쏘는 것이다. 깜짝 놀라 머리를 만져 보니 따끔하고 약간 부어올라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다. 어릴적 아버지께서 앞마당에 7-8통에 양봉을 치면서 벌에게 쏘였던 것이 몸에 면역이 생겨 다행으로 탈없이 지나가게 되었다. 어릴 적엔 벌에 쏘이면 피부가 뚱뚱 부어 며칠씩 지나야 나았는데 이제는 적응이 되었다. 큰일 날뻔했던 기억 아니 추억, 위험한 일이 생각났다.
이 글을 쓰면서 오늘은 짧게 써야지 하면서도 길게 쓰게 됩니다. 이렇게 글을 블로그에 쓰는 것도 처음이요. 자연과 함께 걸으며 느낀 감정을 표현하는 것 또한 처음이라 많은 생각과 기억이 마구마구 솟아 나와 어쩔 수가 없네요. 이제는 마을 입구까지 다 내려온 것 같습니다. 마을 공동 빨래터가 보이네요. 도회지 아닌 시골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아서 여러 가지가 떠 오릅니다. 이곳은 여자들이 빨래하러 와 수다도 떨고 동네 소문도 듣거나 퍼뜨리는 장소가 아닌가요.
입조심과 귀조심을 해야 하는 곳이죠. 겨울은 물이 얼거나 추워서 한가해 보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곳 중에 하나라서 한 여름에 풍경이 스쳐 지나갑니다. 요즘은 세탁기로 빨래를 하니 훨씬 덜하겠네요. 이제는 옛 추억거리로만 남았습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군것질거리중 하나인 곶감을 동네 어르신들께서 마당에서 다듬고 계신다. 색깔이 아주 곱다. 그런데 곶감이 익으면 겉에 하얀 가루 같은 것이 거의 없어서 여쭈어 보니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시장에 반응으로 일일이 제거하고 있다. 그 하얀 가루를 혀로 맛을 보면 설탕덩어인 양 아주 달아서 먹기 좋았는데 이제는 세월이 흘러서 상품기준도 많이 바뀌었다.
몇해전부터 나무에 관심을 가지면서 산이나 들을 걷다가 평소에 못 보던 나무나 꽃을 보면 사진을 찍어서 확인을 하곤 했는데 오늘도 곶감 말리는 어르신들 옆에 그림으로는 많이 보았지만 실물로는 두 번째 되는 천리향과 마삭줄을 보게 되었다. 천리향은 향기가 진하여 천리를 간다고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는데 향기를 한번 맞으면 잊을 수 없을 정도이고 마삭줄 또한 실물로 한번 보았는데 첫 번째 본 것은 꽃잎이 시계방향으로 말리면서 피어 있어 신기하여 기억하고 있는데 잎만 보여 어르신께 여쭈어 보니 알려 주신다.
남명 조식유학자가 기거하던 집 앞에 커다란 상록수 한그루가 있어 가던 길을 뒤로 하고 가봤다. 멀리서 보니 어림짐작으로는 가시나무로 보이는데 정확한 명칭은 알 길이 없고 가까이 보니 정말 추측했던 가시나무다 그것도 아주 큰 잘 자란 나무 한그루가 우뚝 솟아 있다니 의외이다. 대개 양반들은 소나무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회나무등을 주변에 심는데 특히 가시나무는 남해안 바닷가 근처나 주변에서 야생으로 자라는데 좀 북쪽으로 올라온 지역에서 이렇게 크게 자라는 것이 이 지역이 날씨가 따뜻하여 온전히 자라서 보기 아주 좋았다. 사진을 찍고 목적지로 가려고 강변을 따라 걸어가니 강변공원이 소나무와 가시나무로 가득 차 있다. 이제 이곳이 눈이 왜 오지 않았는지 알겠다. 기온이 온화하여 가시나무가 건강하게 자란다.
짧게 짧게 먼길을 왔다. 부지런히 일정을 잡으면 며칠 만에 도 올 수 있는 길이지만 천천히 길을 걸으며 주변 경치와 옛 선인들에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지나오니 온전히 내 강산에 대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지나온 것이 아깝지 않고 후회 없는 일정이라는 생각이다. 한반도에 한 구석이지만 이젯것 제대로 된 여정을 다녀 보지 못한 나로서는 너무나 복 받은 2022년에 시작하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앞으로는 하나하나 놓치지 말고 더 알차게 둘레길을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