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점점 서늘해지고 있는 새벽, 오늘은 무슨 풍경을 보게 될까? 궁금해하면서 산악회 버스에 오른다. 지리산이 어머니 같다는 말을 들은 터라 첫 1구간을 걸을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지리산보다는 동네 뒷산을 오르는 느낌으로 만난 것 같다. 이제 2구간 그래 두 번째로 만나는 지리산은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 질까 잠시 생각해본다. 남원시 운봉읍에서 시작되는 이 구간은 넓은 들판이 앞에 펼쳐질 거라고는 지난 1구간 종점에서 확인되었다.
오늘도 맑은 날씨가 우리를 반긴다. 여행은 날씨가 50%는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걷기에 좋은 계절이며 하늘이 우리와 함께해준다. 출발점에는 동네 어르신들의 편의 시설들이 몰려있다. 이른 아침이라 어르신들이 보이지 않는다. 여행을 하면서 함께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좋지만 그 지역에 사시는 사람들과 지나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울거라 생각했다.
장승은 우리말로 벅수라고 합니다. 앞에 보이는 벅수는 진서대장군으로 여성을 나타내는 마을 수호신, 옆에 있는 당산나무와 나란히 자리합니다. 맞은편에는 방어 대장군으로 남성을 상징하는 마을 수호신이 있습니다. 두 벅수는 화강암으로 된 돌장승으로 일반적으로 나무로 된 장승이 많지만 이 석장승은 국가 민속문화재입니다.
이제 지방은 젊은이 들은 다 떠나고 나이 많은 노인들만 들에서 가을걷이를 하는 모습을 지난 1구간에서도 보았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어르신들만 깨, 고구마 등 추수를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서림공원에 체육시설은 좀 젊은 장년층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 같다. 노인들이 체육시설에서 활동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농사도 바쁜데 운동이라니 하는 생각도 든다.
둘레길 2구간 출발점에 날씨가 더워서 양산 아닌 우산을 쓰고 추수를 한 논을 옆으로 끼고 뚝방을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한다. 이번 2구간은 10km가 안 되어서 3구간 일부를 더 가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그래도 시간은 넉넉하여 오후 4시 30분까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여유가 있는데 산악회원이다 보니 늘 빠른 걸음이 습관이 된 것 같다.
이번 주는 많은 논들이 추수를 하여 농부들이 바쁜 한 주를 보냈으리라. 젊은 시절 논에 벼 베는 일을 도와주었던 기억이 난다. 낫질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몇 번 하다가 허리가 아파서 잠깐 허리 펴고 또 낫으로 벼를 몇번 베다가 허리펴고 참 힘들었던 기억이다. 그래서 농부들이 고생하여 생산한 쌀을 아껴서 먹고 흘리지 말아야 한다고 어릴 적 부모님은 입이 달토록 밥상머리에서 말씀하셨지.
이 시냇가는 여름에 물놀이하느라 바쁜 계절을 보냈을까? 그늘진 장소 가까이에서만 놀았을 것 같다. 개천을 지나면서 옛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삼태기로 풀숲을 발로 밟으면서 지나가면 풀 속에 숨어 있던 물고기들을 삼태기로 잡아서 매운탕을 먹었던 생각이 난다. 지금도 민물고기인 붕어, 미꾸라지, 메기를 좋아하게 된 것도 다 어릴 적 경험한 덕택이다.
운봉읍을 가로질러 흐르는 람천은 바닥이 돌로 되어 우리나라에 하천 바닥은 모래가 바닥에 깔리는데 좀 특이하여 글을 남기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지리산에서 가까운 하천이다 보니 산에서 내려온 모래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냇가 바닥은 거의 모래가 없습니다. 산 골짜기 계곡과 하류 하천의 중간지점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올 가을은 야생화를 여한 없이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름을 하나하나씩 알고 지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냥 지나치려니 꽃들이 자기들을 왜 안 알아주냐고 하는 것 같네요.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은 없다고 누군가 이야기한 기억이 납니다. 정말 들에 핀 꽃들은 집에 있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무리를 지어 피니 더욱 예쁘게 보입니다.
하천 바닥에 듬성듬성 있는 바위들 위에 모래가 쌓여서 풀이 자란 모습이 꼭 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하류로 내려오면서 보게 되는 현상입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처음 보는 자연현상이라 신기하게 생각되어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봄에는 새들이 그곳에 둥지를 들고 알을 낳아 기를 것 같습니다. 주변이 물이 흘러서 새끼들을 보호하는데도 한몫하겠네요.
저 멀리 지리산 서북능선이 보인다고 함께 가는 어느 회원이 전해줍니다. 강원도 능선과는 사뭇 다릅니다. 서북능선은 완만하게 뻗어있는 모습이 평화롭고 느긋해 보입니다.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진정을 시켜줍니다. 가파른 능선보다는 조급함이 없고 여유를 느끼게 합니다. 능선 위에 구름은 꼭 가을 수채화물감을 흩뿌린 모습입니다.
이곳은 고려시대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기 전 고려 무신으로 전라도에 침입한 왜구들을 무찌르고 그 기념으로 세운 황산대첩비가 있었던 장소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그 황산대첩비 비문의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이성계가 공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씨조선시대 선조 10년(1577)에 세웠다.
그 대첩비를 일본 강점기(1945년)에 일본인들이 파괴하여 깨진 비석만 옆에 보관되어 있다. 일본은 지금도 그렇지만 역사를 왜곡하고 흔적을 없애는 것은 아주 귀신들이다. 스스로 반성하고 이웃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침략의 사악함을 지속하려는 음모를 감추고 있다. 그리고 황산이라는 지명은 대첩비를 지나 뒤편에 있는 해발 700m인 이곳에서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옥계저수지를 지나 야트막한 임도를 올라갔다 내려오면 오른쪽 흥부골 자연휴양림에 도착하여 간단한 간식을 해결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지리산"이라는 드라마 세트장이 위에 있다고 알려준다. 허기를 채우고 산을 내려오는데 주변에 사과 농장과 파농사를 짓는 곳이 여러 곳 눈에 띄었다. 함께한 산악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며 내려오는데 갑자기 둘레길 이정표가 눈에서 사라져 버렸다.
안내책자를 찾아보니 이정표를 지나친 것이 확인되었는데 2구간 종점이 멀리 보이는 것이다. 그냥 둘레길을 다시 찾아서 갈까 하다 일행들이 그냥 가자고 한다. 산으로 비스듬히 올라가는 길이라 생략하고 걷는데 앞에 양버들이라는 나무가 높게 솟아 있어 나를 반긴다. 어릴 적 십 대때 집 앞에 양버들 6-7그루가 대청마루에서 보면 나무 꼭대기가 보이는 것이 앞을 답답하게 한 게 아니라 허전한 가슴을 채워 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지리산 둘레길 2구간 종점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을 계획으로 처음에는 생각했는데 오늘 함께한 일행이 간식거리를 많이 가지고 와 중간중간에 해결을 하고 오니 점심 끼니를 걸러야겠다는 생각을 일행들이 공감하여 이 지역 먹거리를 먹지 않게 되어 약간 서운한 생각이 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우리 격언이 있듯이 먹는 것도 특히 여행지 맛을 느끼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과정 중에 하나이다. 오늘도 좋은 추억과 기억을 더듬어준 지리산 둘레길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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