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을 구간별로 일정을 정하여 걷다보면 짧은 구간이 더러 있다. 지난 5구간 코스에서 6구간 일부를 지나와 경호 1교까지 오는 바람에 6구간이 줄어들어 계속해서 그다음구간으로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수원에서 내려와 하루에 걷기는 아까운 시간이 낭비된다는 산악회 대장님에 판단에 이번에도 성심원을 지나 어천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이번 구간을 혼자서 아니면 둘이서 오거니 가거니 하다가 마지막구간에서 혼자 걷게 되었다. 지난번에 성심원을 지나 아침재까지 넘어가는데 직진해서 가면 어천마을로 간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측으로 둘레길코스로 걸어갔다. 산속으로 계속가게 되면 어천마을 지나쳐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판단하여 계속해서 대통골을 지나 가파른 언덕으로 올라가는데 지금까지 온코스 중에 가장 힘든 경사도여서 어천마을로 다시 내려왔다.
이코스는 둘레길을 여행하는 우리 산악회원중에서 나 혼자만 지나간 길이다. 지난번에 지날 때 날씨가 너무 화창하여 저 멀리 둔칠산 봉우리가 보인다. 계곡 밑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통영 대전고속도로가 지난다. 한 20여분 걸어왔다. 올라오는 길이 힘들다 보니 다른 생각 없이 부지런히 올라와 뒤를 돌아보았다. 여행에 날씨는 여러 조건중에 가장 중요한데 둘레길 일정을 잡고 보면 날씨가 흐린 날이 없어서 다행이다.
지금까지 둘레길을 걸으며 많은 고개를 지나왔다. 예전에는 이길을 소가 끄는 마차를 타거나 걸어서 마을사람들이 오갔을 것이다. 쉬운 길은 아니다. 힘들게 걸어야 한다. 고갯마루에 올라오면 잠깐이라도 쉬었다 갔을 것이다. 고개꼭대기에 오르면 주변이 넓게 펼쳐 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잠깐식 이곳에서 만나고 이야기를 했으리라.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내려가야 하기에 늦은 시간에는 오르지 않았겠다. 외딴지역이다 보니 사실 이 길을 지나면서 두려움과 무서움도 있었겠다. 나의 어릴 적 살던 곳도 큰 재는 없었지만 작은 재가 서너 개 되었는데 어릴 적에 지나다 보면 주변에 묘지도 있고 인가가 없어서 낮에도 무서웠다.
지난 6구간(수철마을에서 성심원까지)에서 알바로 왔던길이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오르다 내려갔다. 저 멀리 신기마을이 어렴푸시 보인다. 둘레길을 오는 목적은 보통 쉬엄쉬엄 느긋하게 걸으며 일행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자신만이 혼자서 생각에 잠기거나 혹은 지난 시간을 정리하려고 오는 경우인데 이 구간은 전혀 그럴 여유가 없다. 오직 급경사를 올라야 한다는 일념하에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땀 도나고 숨도 차고 하여 진짜로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둘레길은 아직 우리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왜 둘레길을 걷는지 모르는 회원들도 더러 있다. 차차 걷다 보면 알게 되겠지 하면서 즐겁게 걷는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서 힘들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시간을 보니 일행들보다 일찍 왔다는 생각에 옆에 회원과 웅석봉정상을 갔다오자고 이야기하니 그곳을 갈마음으로 빨리 왔다고 하면서 지름길로 가자고 한다. 임도 옆 오른쪽에 자주 다니지 않는 등산길이 보여 서둘러 올라가는데 높은 곳이다 보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마침 일행보다 앞서가던 한 회원이 내려오는 것이다. 눈이 많이 와 아이젠을 준비하지 못하여 도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마침 나는 비상용으로 30년 된 아이젠을 준비했기 다행이다 싶어 서두르는데 눈이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다. 바람도 초속 10m/s 정도는 될 것 같다. 혼자 왔으면 위험했을 뻔했다. 오랜만에 아이젠을 차고 가는데 자꾸 벗겨진다. 아주 구형이다 그래도 자랑스럽게 가지고 다니는데 너무 불편하다. 이젠 새것으로 장만해야겠다.
둘레길을 걷다 1000m 고지를 오른것은 처음이다. 이건 둘레길이 아니다. 등산이다.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시간이 허락하면 멀리 지리산 능선이 보이는 여유로 가볼 만은 하다. 정상에 도착하기 전에 화재감시초소가 있는데 어천마을 주민 한분이 근무를 서고 계신다. 높은 곳이니 불난 곳을 파악하는데 이상적인 장소이다. 겨울은 좀 추워서 일하기가 힘들 것 같다. 나이가 거의 70대를 바라보는 연령대여서 쉽지 않겠다. 산 짐승들도 나타나겠지 하면서 부지런히 하산을 하는데 계단에 눈이 제법 쌓여서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나무계단뿐 아니라 돌계단과 중간중간에 흙길도 있는데 낙엽이 많아 뛸 수 없었다.
웅석봉하산길은 초입만 눈이 쌓여서 불편했지 임도로 들어서서는 아주 편하게 내려왔다. 임도길이 그리 짧지 안았지만 초봄이나 늦겨울에 걸으면 더 운치가 있을 것 같다. 약간 찬바람이 불지만 따뜻한 온기를 느끼면서 내려오면서 예전에 고향 가까운 곳인 삼성산(관악산줄기) 능선을 지나 삼막골로 들어가는 지역을 자주 가곤 했는데 아직도 그 계절에 잔설과 약한 냉기가 항상 내 몸에 내재되어 있다. 탑동마을을 지나다 보면 집 주변에 예쁜 나무(호랑가시나무)가 서너 집에 자라고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남쪽 해안가에서 주로 자라는 나무로 알고 있는데 내륙에 있는 산청에서도 생육이 가능하다니 암튼 책만 보면 제대로 모르고 지나는 게 많다. 실물과 이론을 함께 알아야 한다.
목적지인 운리마을에 다 온것같다. 마을이름이 두 개인데 집들이 적다. 한적하니 겨울이지만 따뜻하고 아늑하다. 빨리 봄이 그리워진다. 봄이 되면 들과 논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연둣빛 색깔이 들판을 물들이겠지. 멀리 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걸을 때마다 봄내음이 물씬물씬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찌릿해온다. 지금은 땅과 물이 차갑게 느껴지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새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는 계절이 앞에 펼쳐지겠지. 둘레길도 이제는 겨울을 지나 봄으로 향하고 있으니 추위는 저 멀리 가버린 기분이다. 겨울이 늘 싫은 것은 아니지만 지난겨울은 사회적으로 코로나에 경제적 인플레이션과 물가폭등, 정치적인 갈등 국제적인 전쟁으로 감정이 메말랐다. 앞으로 좋은 기운이 온 세상에 퍼져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 없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함께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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