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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피렌체에서 마키아벨리를 만나다

by meja 2024.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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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둘째 날 오늘은 마키아벨리의 흔적을 찾으러 가는 날이다. 아직도 피렌체시내 방향감각은 없지만 숙소에서  피렌체역 쪽으로 가 역을 가로질러 아르노강가까이로 길을 따라간다. 어제 왔던 길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면서 부지런히 걸어가니 베키오 다리 입구다.

 

베키오다리위 양옆에 많은 보석상점들

 

피렌체 가면 베키오다리는 꼭 가야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이 다리를 통해서 마키아벨리 생가터를 가는 중  다리에 낯선 이층 건축물은  베키오궁전과 피티궁전을 연결하는 별도의 공간이란다.  다리 일층 가장자리에는 보석가게가 양옆으로 빈틈이 없다.  처음에 다리 위에는 정육점과 가죽세공품, 대장간등의 가게가 있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생가 벽위에 표지판

 

베키오다리를 건너 약100m 를 오니 마키아벨리 생가터를 알리는 표지판이 거리에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둘러보다가 어느 건물 2층벽에 글씨를 보니 표지판에 마키아벨리 이름자가 보인다. 이탈리아어로 된 표지판에는 전쟁으로 파괴된 집을 복원하고 마키아벨리를 기념하기 위해 표지석을 세움이라고 되었고 소하보치 푸치 세리 스토리(Soha Bossi Pvcci Serristori)의 작품이라고 쓰여있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시대의 부흥기를 최대로  이끈 도시라 지금으로 보면 미국의 실리콘벨리라 불릴만하다.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chiavelli)의 걸작인 군주론을 지난봄에 읽은 터라 마키아벨리에 대해 관심과 알버트 허쉬 먼 경제학자의 평전에서 마키아벨리를 새로이 평가했다는 알버트 허시먼의 관심에 처음으로 고등학교 때 배운 책제목을 본격적으로 탐독하게 되었다. 

 

 

Santa croce (산타 크로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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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요즘 핫한 인물로 여러 사람들에 의해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국제정치에서는 20세기에 독재자들과 이탈리아정치인 무솔리니 등이 좋아했다는 일화도 있어 마키아벨리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나 좀 더 자세히 그에 대한 자료를 보고자 그가 묻혀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으로 왔다.  성당 입장료를 내고 이곳 피렌체는 대부분의 성당이 입장료가 있다.  무덤을 찾기 위해 성당 안 바닥에 있는 장소를  다녀야 했다. 

 

산타 크로체성당의 마키아벨리 무덤

 

 

 성당에는 많은 유명인의 무덤이 있는데 갈릴레오 갈릴레이,미켈란젤로.단테의 가묘, 음악가인 로시니, 과학자 엔리코 페르미  등의 무덤이 있다. 미리 알아보지 않고 가서 인지 찾는데 처음부터 하나하나 확인해야만 찾을 수 있었다.  성당안에 무덤을 확인하다 보니 여러 유명한 무덤도 알게 되었는데 마키아벨리 무덤은 다른 무덤들에 비해 단출하고 소박해 보였다. 특히 단테의 가묘는 굉장히 화려했다. 이 성당이 피렌체의 판테온으로 불리는 이유인가 보다. 무덤은 성당내부 벽을 따라 그 아래 세로로 만들어져 있다. 

 

 

마키아벨리 생가터

 

아르노강 건너에 있는 마키아벨리생가터는 전쟁으로 파괴되어 복원된 형태라 그가 살아있을 때의 형태는 전혀 볼 수 없다. 단지 그가 걸었던 길과 제2서기장으로 재직할 때의 사무실로 추측되는 우피치미술관은 그대로 있어 다행이다. 그가 꿈꾸었던 이탈리아통일은 19세기에 완성되었지만 그는 조국 이탈리아와 미래를 내다보고 과거에 흔적을 바탕으로 정치적인 이념인 공화주의를 부흥시킨 정치적 저술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제는 독재자들의 전유물로 전락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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